그러나 나는 한 번도 풀밭을 묘혈원이라고 부른 적이 없다. 풀밭 따위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 우습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가 그녀인 것처럼 풀밭은 단지 풀밭일 뿐이다. 처음에는 잡초도 뽑고, 잔디 깎기로 다듬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 그대로 두는 것이 가장 풀밭답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 집주인도 나와 같은 과정을 겪은 후 풀밭을 자연스럽게 내버려두는 것으로, 풀밭을 가꾸지 않는 방식으로 가꾸어온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돼지에게도 언어가 있을까. (중략)

돼지의 언어를 안다고 돼지의 삶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둘은 풀밭에 나란히 누워 저 구름은 어디서 흘러와서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하는 식의 대화를 한다. 갑자기 돼지에게 참을 수 없는 질투를 느낀다. 실제로 불가능한 현실을 떠올릴수록 불가능성이 가능성으로 바뀌고 현재에도 그녀가 돼지와 나 몰래 그렇고 그런 행각을 벌이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다다른다. 


하늘 저편에서 몰려오던 먹구름은 이제 하늘 이펴에 당도해 자신의 정체를 가시화시키고, 대기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쓴다. 요즘은 시시각각 변모하는 자연 현상에 자주 압도당한다. 저 불가항력의 자연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이전까지의 삶이 모두 실패의 연속이었지 않나 하는 자괴감에 빠젼든다. 자괴감은 자괴감으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생각으로 전이된다. 얼마 전부터 나는 생각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다. 나의 생각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생각일 뿐이고 생각의 실체는 없다. 오로지 생각에서 생각으로 이동하는 생각의 우스꽝스러운 궤적만 있을 뿐이다. 나는 되도록 생각하기 위해 애쓰면서 생각에 몰입하는 자신을 못 견뎌 한다. 생각을 하게 만드는 힘과 생각에 몰입하지 못하게 만드는 힘 사이에 존재하는 또 다른 힘에 대해 좀더 생각을 해야 한다. 


Posted by 버섯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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