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한강 교수님의 장편소설 하나를 읽고 나는 미술에 굉장한 관심이 생겼다. 관심...이랄까 동경. 그런 느낌인데. 그 소설의 제목은 <그대의 차가운 손> 이다. 이후로 나는 미술을 하는 주인공을 종종 소설에 등장시켰다. 물론 늘 보기좋게 실패햐지만. 그리고 오늘, 장편소설 두 편을 더 읽으려고 마음 먹었는데, <바람이 분다, 가라>와 <희랍어 시간> 이다. 중간고사 기간이라 지난주와 이번주에 거의 쉬지 않고 과제만 했다...그리고 한동안 책을 거의 읽지 못했고, 읽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과외하는 학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강 교수님이 멘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갑자기 교수님의 소설을 읽고 싶다고 생각해서... 시험기간이라는 고3에게 두 편의 장편을 읽도록 시켰다. 다 읽어올거라는 기대는 없다. 실은 내가 읽고 싶어서 읽으라고 한 걸 수도... 암튼 두 소설은 짱이고 이거랑 이제 내여자의 열매 정도만 더 읽으면 한강 교수님의 소설을 거진 다 읽는 것이 된다. 지난 학년 1학기에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적응을 잘 하지 못했었는데... 1학년 때 수업을 들었던 윤성의 교수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ㅋ-ㅋ)와 한강교수님의 나긋한 목소리가 완전히 상반되었던 것이 한몫 했던 것 같다. 그리고...내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였기에 교수님의 옆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심장이 너무 쿵쾅쿵쾅...(아 윤성희 교수님의 소설도 좋아했다!;) 떨려서 그때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 잊어버렸어...너무 떨려서. 아 또... 나는 한강 교수님의 책을 읽으면 작가의 말을 꼭 읽는다. 더 열정적이었던 나는 인터뷰 글이나 영상도 다 찾아봤지만. 작가의 말을 필사한...유일한 사람. 내가 생각하는 한강 교수님은좋은 교수님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좋은 작가다. 소설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교수님의 태도와 뭐라하지...그 모든 것이 소설가 자체다. 내가 닮으려고 무척 애를 쓰지만 절대 닮을 수 없는 것. 아무튼 오늘도 마음에 드는 페이지에 포스트잇 붙여놨다가 포스트잇 다썼다...무시무시한 책. 조금만 필사 해야지.


작가의 말..

  어두워 지기 전에, 하얗게 얼어붙은 강을 전철로 건넜다. 강의 가운데는 얼지 않아서, 얼음 가장자리에 물살이 퍼렇게 빛났다. 이제 정말 이 소설이 내 손을 떠난다는 사실이 실감되었다.


  네 번의 겨울을 이 소설과 함께 보냈다. 바람과 얼음, 붉게 튼 주먹의 계절. 이 소설 때문에, 여름에도 몸 여기저기 살얼음이 박힌 느낌이었다. 때로는 이 소설을 놓고 서성였던 시간, 뒤척였던 시간, 어떻게든 부숴야 할 것을 부수며 나아가려던 시간 들을 이제는 돌아보지 말아야겠다.


 ---------------------------------


  그의 목소리는 긴장한 듯 미세히 떨렸고, 두 눈은 노골적인 의심과 반감을 싣고 내 얼굴에 꽂혔다. 그 강한 감정으로 인해, 반쯤 죽은 사람처럼 건조하던 그의 얼굴은 처음으로 생생하게 살아난 것처럼 느껴졌다.


  죽음은 내 뒤를 따라다녔다. 때로 앞서서 걸어가기도 했다. 잠을 잘 수 없는 밤, 좀처럼 새지 않는 밤에, 어둠 속에 누워 있다가 그것을 느낄 때가 있었다. 다리를 바꿔 꼬아가며 밤새 나를 건너다보고 있는 그것의 눈을, 나는 땀을 흘리며 뒤척였다. 때로 삼촌을 불렀다. 인주를 불렀다. 아니, 그들을 부르지 않았다.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과속으로 달리는 택시 차창 밖으로 모든 것이 뒤섞여 있다. 먹처럼 엎질러진 어둠. 그 사이로 희미하게 빛나는 기둥들. 텅 빈 거리. 셔터를 내린 상점들. 얼어붙은 분수대. 거대한 납골당 같은 아파트 건물들. 소리 지르는 것 같은 날카로운 나뭇가지들. 


Posted by 버섯씨

블로그 이미지
일상블로그 / 모든 것을 취미로 하는 사람 / 세상의 모든 귀여움을 사랑하는 사람
버섯씨

태그목록

공지사항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