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21. 16:29 버섯씨의 대단한 취미/필사
박해영 <슈뢰딩거의 고양이> 중에서
버튼을 눌러야 했다
밤새 안녕을 확인해야 했다
살아있기도 하고 죽어있기도 한 그대
미끄덩거리는 수프 속에서 탈출해야 했다
그러나 이렇다
버튼이 눌려지고
그대 향한 나의 발신이 시작되고 나면
당신은 죽었거나 살아있거나가 되는 것이고
나는 당신의 살아있음을 골라 잡을 수 없다
결별의 룰렛을 돌려놓고
당신이 숨어든 동굴 속에서
지금쯤은 안은 채 둥둥 떠올라 하늘에라도 오랐는가
혹은 아무도 모르는 내 그곳의 사마귀를 떠올리며 미소라도 짓는가
그러니 이렇다
이별뿐인 당신의 룰렛은
당신이 내게 돌아오는 날까지 홀로 돌아갈 것이고
살아있기도 하고 죽어 있기도 한
확률로만 살아 있는 당신과 봄날을 맞이할 것이다
그래 시방은
그대 향한 버튼 위에서
내 엄지손톱이 파르르 떨고 있지만
절대 버튼을 누를 수 없다
밤새 안녕, 밤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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