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 씌어진 작품이란 걸 믿을 수 없는 현대적인 문장들과 소설 전개 방식이었다. 진짜 충격먹음 ㅠ 이제야 읽은 게 부끄럽기도 이제 읽은 게 다행같기도 하다. 어떤 기준 없이 내가 좋았던 문장들을 골라 필사했다. 그리고 여기에 옮긴다. 요즘은 특별한 일이 없이 지내다보니 이렇게 가끔 필사하는 포스팅만을 올리게 된다. 아 그리고 별 얘긴 아니지만 이 책에는 오타가 많아서 읽는데 좀 헷갈렸다. (첨보는 출판사의 책) 그런데 그게 또 왠지 재밌었던 것 같다. 오타인지 내가 모르는 단어인지 사전을 검색하게 한 오타도 있었다. 그리고 이 포스팅에는 내가 또 다른 오탈자를 낳겠지. 가끔은 오타때문에 창피한 포스팅도 몇 개 있고 트위터에도 썼지만 붉닭볶음면 같은... 오타를 내고도 모르는, 몇 번을 반복해서 틀리는 단어도 있다. 하지만 요즘 대부분의 오타는 블루투스 키보드 때문에 난다.

애인은 책꽂이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들, 그냥 좋아하는 책들 그리고 좋아하는 책들로 나누어 책을 꽂는데 만약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나는 이것을 가장 좋아하는 책들에 꽂을 것이다. 아주 그냥 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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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연습 중에서


-늦가을 햇살이 <윈도우> 밖에서 하늘거리고 있었다. 레지가 다가와서 <윈도우>를 배경으로 하고 꾸부리고 서서 빈 찻잔을 거두더니 살며시 비켜서듯 돌아갔다. 레지의 허리를 굽힌 <실루엣>이 아직도 남아서 아물거리듯 했다.


*건(乾) 중에서


-그 시체가 눈앞에 떠올랐다. 문득 애착이 가는 환상. 시체가 손발을 쭉 뻗고 엎드린 그 자세대로 공중을 둥둥 떠서 팔을 벌리고 서있는 아버지에게로 날아오고 있다. 공중을 느릿느릿 비행해 오는 시체는 가느다란 바람에도 흩날리고 그럼으로써 시체는 그가 지니고 있던 모든 잡된 요소를 바람에 실려 보내버리고 이제야 태어나기 전의 사람 아니 모든 것이 살았기 때문에 가장 가벼워져서, 공중을 나는 것이다.


-시체는 아제 괴로운 표정을 씻고 입가에 웃음을 싣고 있었다. 시체다. 시체가 우리의 차지가 된다. 우리의 손이 닿으면 시체는 웃음을 띤 채 살아날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흘깃 올려다보았다. 아버지는 묵묵한 자세로 입에 밥을 퍼넣고 있었다. 


-관 뚜껑을 닫기 전에 노파가 관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시체의 누런 얼굴을 손바닥으로 하염없이 쓸어주고 있었다. 노파의 가죽만 빼빼 남은 손이 느리나마 쉬지 않고 움직였고 그러고 있는 노파의 눈은 무겁게 감겨져 있었다. 반듯이 누운 시체 위에 관 모서리의 그림자와 바람이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관이 내려지는 동안 노파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아마 그 시체의 이름인 듯한 것을 몇 번이고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구덩이 속으로 근방에서 긁어모은 돌을 던져 넣었다. (중략) 나는 처음의 돌 몇 개는 남들처럼 천천히 던져 넣었지만 그러나 나중엔 힘껏 마치 돌팔매질 하듯이 던졌다. 내가 던지는 돌이 관에 맞는 소리는 딴소리와 뚜렷이 구별되어 울렸다. 


*역사(力士) 중에서


-대낮에 서 시까, 동대문의 바로 곁에 서서 행인들 중 누구 한 사람도 성벽을 이루고 있는 돌 한 개의 위치 변화에 관심을 보내지 않고 지나다닐 때, 옮겨진 돌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을 나는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절망감이 마루 끝에도 마당 가운데서도 방마다에도 차서 감돌던 창신동의 그 집에서는 식구들에게 그들이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형체 없는 감동 같은 것을 조금씩은 깨우치고 영혼의 안정에 얼마간은 공헌할 수 있었던 나의 기타는 그래서 노인들이 우연한 한마디에서 갑자기 자기의 늙음을 발견하듯이 낡아빠진 모습으로 방의 구석지에 기대어져 있지 않으면 안된게 된 것이었다.


*확인해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은 가장 좋았지만 어쩐지 어떤 부분을 필사해야 할지.


*싸게사들이기 중에서


-K에게는 책을 싸게 사는 비결이 있다. K는 사고 싶은 책에서 몇 페이지를 곰보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찢어낸다. 그리고 다음날이나 며칠 후에 가서 그 책을 흥정한다. 그리고 페이지가 많이 찢겨져나간 책을 누가 사느냐고 배짱을 내밀어본다. 곰보는 대개 별 수 없이 양보하고 만다. 집에 돌아와서 찢어낸 페이지를 다시 그 자리에 스카치테이프로 붙이면서 K는 기분이 좋다.


*무진기행 중에서


-그 바람 속에는, 신선한 햇볕과 아직 사람들의 땀에 밴 살갗을 스쳐보지 않았다는 천진스러운 저온(低溫), ㄱ리고 지금 버스가 달리고 있는 길을 에워싸며 버스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는 산줄기의 저편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소금기, 그런 것들이 이상스레 한데 어울리면서 녹아 있었다. 햇볕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海風)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지상(地上)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 잘버는 제약회사의 전무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조용히 잠들고 싶어하고 조용히 잠든다는 것은 상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물이 가득한 강물이 흐르고, 잔디로 덮인 방죽이 시오리 밖의 바닷가까지 뻗어나가 있고, 작은 숲이 있고, 다리가 많고, 골목이 많고, 흙담이 많고, 높은 포플러가 에워싼 운동장을 가진 학교들이 있고, 바닷가에서 주워온 까만 자갈이 깔린 뜰을 가진 사무소들이 있고, 대로 만든 와상(臥床)이 밤거리에 나앉아 있는 시골을 생각했고 그것은 무진이었다.


-그 소리는 길었다. 모든 사물이 모든 사고(思考)가 그 사이렌에 흡수되어 갔다. 마침내 이 세상에선 아무것도 없어져버렸다. 사이렌만이 세상에 남아 있었다.

  그 소리도 마침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오랫동안 계속할 것 같았다. 그때 소리가 갑자기 힘을 잃으면서 꺾였고 길게 신음하며 사라져갔다. 내 사고(思考)만이 다시 살아났다.


-그때 내가 쓴 모든 편지들 속에서 사람들은 '쓸쓸하다' 라는 단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결국 아내의 전보는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이, 흔히 여행자에게 주어지는 그 자유 때문이라고 아내의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이 세월에 의하여 내 마음속에서 잊혀질 수 있다고 전보는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처가 남는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랫동안 우리는 다투었다. 그래서 전보와 나는 타협안을 만들었다. 한번만, 마지막으로 한번만 이 무진을, 안개를, 외롭게 미쳐가는 것을, 유행가를, 술집여자의 자살을, 배반을, 무책임을 긍정하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한번만이다. 꼭 한 번만.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한정된 책임 속에서만 살기로 약속한다. 전보여, 새끼손가락을 내밀어라. 나는 거기에 내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한다. 우리는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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