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를 필사 말고 감상을 따로 만들어야 했나...

오래 전 원유순 작가님의 <우리 엄마는 여자 블랑카>를 오래전 읽은 게 기억이 난다. 임신 초기 잠실역에 있는 알라딘에 갔다가 읽을 책을 찾지 못하고 한참 헤매이다가 우연히 읽게된 책. 선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배땡기는 줄도 모르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고양이야, 미안해!>를 만나게 된 것이다.

원유순 작가님은 <김찰턴순자를 찾아줘유>라는 작품으로 소천문학상도 수상하셨다고 한다. 고양이야, 미안해! 에서도<조나단 알기>를 통해 혼혈 아이 이야기를 하셨구... 역시 좋은 글에는 깊은 관심이 따른다는 것을 또 한번 느꼈다.

첫 작품으로 실린 <도도야, 어디가니?>는 개인적으로는 별루...나머지 작품들은 좋았다.

요즘에는 왜이렇게 할머니 이야기가 끌리는지.

그리고 실린 단편들 모두 단편동화의 미학이랄까 그런 걸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매듭을 지어주지 않아서 더 오래 가슴에 머물러 있는. 내가 요즘 쓰고 싶은 동화가 이런 건데 흑흑. 어제 읽은 네모돼지에 이어... 또 다시 내껀 ㅠㅠ

그리고 계속 쓰지 않으면 정말 닳아버린다는 거 어제 또 느껴버린 게 미절의 소설 문장이 진짜 멋져졌다는 거다. 나랑은 계속해서 격차가 벌어지는 중이다. 부럽다 부러워.

이럴 시간에 하나 더 쓰자..휴휴

Posted by 버섯씨

혀를 사 왔지

-"이봐, 안 사면 후회하게 될 거야."

뒤를 돌아보았어. 어린 당나귀가 돗자리를 펴고 앉아 혀를 팔고 있었어. 사실 나는 혀 같은 건 조금도 필요하지 않았어. 하지만 결국 그 어린 당나귀에게서 혀를 사 왔지. 왜 하필 혀를 사왔느냐고? 난 혀가 없거든.

- 혀, 품절.

다행이오. 내게도, 혀가 필요했던 이들에게도.


지구는 동그랗고

-할머니의 세계와 아빠의 세계는 언제나 달랐다. 아빠는 우주를 만들었고 할머니는 우주를 파괴했다.

-가방이 열리더니 구슬들이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밤바람 때문인 거야?"

"네가 엄마를 기다려서지."

아빠와 나는 우주의 그 어떤 것들도 우리의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작게 속삭였다.

구슬들은 천천히 높이 떠올랐다. 우리가 누워 있는 바위도 구슬들을 따라 하늘 위로 떠올랐다. 아빠와 나는 바위 위에 올라섰다. 구슬들은 우리가 서 있는 바위를 중심으로 부드럽게 돌며 바람을 일으켰다.


나를 데리러 온 고양이 부부

-나는 학교 가는 길이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양이 부부를 만나 산책하는 것이 좋았다. 고양이 부부는 언제나 느긋하게 걸었다.

-고양이 부부는 우아하고 노련하게 할짝할짝 차를 혀로 핥아먹었다. 물론 나도 엄마가 준 우유를 혀로 핥아 먹어 본 적이 있다. 엉덩이를 한 대 맞은 뒤로는 엄마 앞에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일이지만. 나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국이나 음료를 핥아 먹을 줄 알았다. 잠시 잊고 있던 좋은 기억들이 몸에서 배어 나왔다. 내가 정말 고양이 부부의 아이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 집에 종이 엄마가

-나는 엄마의 말을 들을 때마다 가볍고 튼튼하고 좋은 소리가 나는 기타가 되는 상상을 했다. 그럼 언제나 엄마 등에 업혀서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고, 엄마가 나를 숨길 필요도 없고, 카페에선 나를 안고 노래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기타가 되는 일은 꿈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집에 데려다 줘."

"그 집이 아니라 이 집이라고. 집이 훨씬 좋지? 네 친할머니 말이야. 이사 온 걸 모르고 내가 거기 데려다 준 거야. 얼굴도 비슷하고 해서. 너라면 한두 번 본 사람 얼굴을 기억할 수 있곘냐고. 머리 모양도 비슷하고 체구도 비슷하고 게다가 그 집에 살고 있으니 그런가 보다 했지. 그러니까 이건 절대 내 잘못이 아니야. 넌 대체 그날 그 할머니에게 뭐라고 말한 거니?"

"'엄마가 저를 버렸어요.'라고 말했어."

"미쳤었구나. 이건 다 네 잘못이야. 내가 분명히, 김영광 씨 딸이라는 말을 하랬잖아."

"그 말도 했어."


돌 씹어 먹는 아이 / 아빠의 집으로 / 아무 말도 안 했어? 까지 총7편

문학동네. 안경미 그림.


줄곧 빌리고 싶었던 송미경 작가의 돌씹어먹는 아이. 빌린 자리에서 다 읽었지만 필사하고 싶어서 반남은 안 했고... 김남중 작가님 책과 동시집을 빌리자! 했는데 동시집은 아는 게 없었고... 자존심을 빌리려다 싸움의 달인 빌려왔다. 곧 필사해야지.

송미경 작가님 책은 듣던 대로 상상력이 엄청났고... 혹시 난 주워 온 아이가 아닐까? 혹시 난 고양이가 아닐까 하는 어린이적 고양이 부부라는 재치있고 흥미로운 소재로 이끌어낸 나를 데리러 온 고양이 부부. 가장 재밌게 읽었다. 전체적으로 단편 동화의 진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려워하는 동화적 문장(?)과 소설적 문장(?)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점이 따라하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다. 지구는 동그랗고 같은 경우에는 내가 쓰는 어두운 동화들과 조금 비슷했는데 마지막에 환상적인 결말이라 좋기도 아쉽기도 했다.

Posted by 버섯씨

88p - 89p

"아마 물고기 등에라도 닿은 거겠지."

선원은 이렇게 생각하고 그냥 넘겼습니다.

그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악아였습니다. 강바닥에서 낮잠을 자던 악어들은 위에서 막대기가 내려오자, 덤벼들어 막대기를 갉아먹었습니다.

이런일이 몇 번 되풀이 되는 동안, 막대기는 점점 짧아졌습니다. 어느덧 막대기가 1미터나 줄었는데, 선원들은 그 사실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앞쪽에 여울이 바싹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선원들의 막대기는 너무 짧아 강바닥에 ㅏㅎ지 않았습니다. 쿡 선장은 배를 그대로 나아가게 했고, 배는 그만 여울에 얹히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아프리카 다이아몬드호는 좌초했습니다.


95p

"오늘 밤엔 산책하러 나오길 잘했군. 희한한 고양이랑 인간이랑 배를 볼 수 있었으니까."

하마들이 즐거워했습니다.


111p

"왜 우리를 쫓아오는 거예요?"

"도망치니까 그렇지!"

코끼리가 외쳤습니다.

"당신이 쫓아오니까 도망치는 게예요. 왜 쫓아오는 거예요?"

"도망치니까 그렇지!"


126p

친해질 거야. 친해질 거야.

반드시 누군가와 친해질 거야.

친해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반드시 누구하고든 친해질 거야.

싸움은 친해지고 싶은 사람하고만 하는 것.


138p

"마침내 원숭이 나라 박물관에도 희귀한 것이 들어왔다. 이 희귀한 것은 생물인 것 같군. 초원을 코끼리보다 빨리 달리고, 움직이지 않으면 흙과 구분할 수 없으며, 울음소리는 새와 같아서 붕 하고 운다." 

157-158p,165p의 이상한 기분

엄마 원숭이가 아기 원숭이들을 택시에서 거내 안아 올리자, 원숭이 왕이 물었습니다.

"어떤 기분인지 아기에게 물어보라."

엄마 워숭이가 아기 원숭이들에게 기분이 어땠는지 물었습니다. 그중 한 마리가 대답했습니다.

"이상한 기분."


원숭이들은 다시 소란스러워졌습니다.

모두 이상한 기분에 빠져 보고 싶다고 떠들었습니다.


원숭이 왕은 이렇게 기분 좋았던 적이 없을 만큼 기분이 좋았습니다. 택시에서 내린 원숭이 왕은 원숭이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이상한 기분은 좋은 기분이다. 좋은 기분은 택시의 기분이다."



Posted by 버섯씨

얼마전 도서관에 가서 동화책 두 권을 빌렸다.

월요일에 갔는데 어린이열람실에 어린이들이 아주 많았고. 내가 동화책이라고 말하는 책들을 아이들은 소설책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보았다. 뭔가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ㅅ' 

아 또... 어린이들은 정말 거침없다. 책을 소독하는 신기한 기계(?)를 첨 봤는데 겁쟁이 쫄보마냥 뒤에서 쳐다보고 있는 나와 달리 애들은 이것저것 능숙하게 눌러보았다. 그리고 조금 자랑스러운 듯 내 눈치를 살피기도ㅋㅋ

국내동화와 외국동화를 한 권씩 빌려왔는데 국내동화는 2002년도에 나온 책이라 그런지 진부하고 노골적인 표현들이많아 아쉬웠다. 외국동화는 또 일본책이라 깜놀...내가 왜 자꾸 일본동화책에 끌리는지는 생각해 보아야 할일이다.

이 책은 고양이 택시 라는 작품의 후속작 같은데 고양이가 직접 발로 뛰어 운전하는 택시라는 점과 재치있는 표현들이 좋았다.

톰의 아버지는 멋진 말을 많이 하는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언제나 매력적이지.

아직 반밖에 읽지 않았지만 확실히 좋았다.

사토 아야의 삽화도 멋졌음

----------------------------------------------------------------------------------------------------------------------------------------------

10P

"어디까지 가세요?"

"이 얼마나 멋진 밤인가,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군."

신사 모자 고양이가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정말 멋진 밤이군요. 그런데 어제도 이런 밤이었어요. 어디까지 가시나요?"

"어디로 갈 것인지는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세요?"

"인간은 왜 매일 집으로 돌아갈까. 이 또한 문제지."




15P 

"학문과 모험은 전혀 다르지 않답니다. 쥐의 수염과 꼬리 같은 거예요. 달라 보여도 쥐라는 사실은 변함없어요. 마찬가지로 학문도 모험도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는 다 같은 것이지요."

"톰, 네 아버지는 어려운 말씀을 하시는 분이로구나. 우유를 듯겠느냐고, 네가 한번 여쭤보렴."

렌스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우유, 좋지요. 다만, 불에 따뜻하게 데워서 잘 식힌 우유를 마시고 싶군요."

존 박사가 말했습니다.

"맙소사, 여기서 더 성가신 일만 안 생겼으면 좋겠구먼."


29P

"모험을 꼭 해야만 하나요?"

"모험을 할 기회가 왔으면 잡아야지. 기회는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거란다. 어쩌면 평생 안 올지도모르고. 모험을 하면 되풀이되는 하루하루에서는 알 수 없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단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모험이 끝난 뒤에 알게 되는 법이지."


37-38P


바로크 은행장은 고민 끝에 다이아몬드 이야기를 부인한테만은 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을 참기는 힘들고, 그렇다면 부인에게만 이야기하고 두 사람 사이의 비밀로 하면 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로크 은행장은 이미 잠들어 있는 부인을 흔들어 깨우고 말했어요.

"랜스가 스코트랜드로 병문안을 갈 모양이야."

부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러는 척만 하는 거고, 사실은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어. 있잖아, 이건 아무한테도 하면 안되는 이야기인데, 당신한테만 특별히 말할게 정말 비밀이거든."

부인은 잠결에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톰의 아버지가 가지고 온 다이아몬드와 아프리카에 사는 원숭이 왕, 톰과 랜스할아버지가 다음 주 일요일에 아프리카로 출발한다는 것까지요.

발크 은행장은 이야기를 마치고,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인이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닏. 누군가에게 이 비밀을 털어놓지 않으면 마음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중략)

한편 바로크 부인은 비밀을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그래서 건너집에 사는 여동생에게만 털어놓기로 했습니다. 동생이라면 비밀을 지켜 줄 거라고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여동생도 다이아몬드와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빵집주인에게만 이야기했습니다. 빵집 주인은 다시 꽃집 주인에게, 꽃집 주인은 또 신문 보급소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비밀을 지키고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45P

톰의 짐은 초대짱뿐입니다. 갖가지 나무 열매와 마른 벌레 들이 붙어 있는 커다란 잎사귀입니다. 톰이 초대장을 펼치자, 그 안에서 봉투 세 개가 나왔습니다.

봉투에는 각각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조금 곤란할 때 읽는 편지.'

'곤란할 때 읽는 편지.'

'아주 곤란할 때 읽는 편지.'


 56P와 63P의 센스

모두가 모여서 쇠고기 통조림으로 아침밥을 먹었습니다. 쿡 선장은 즐겁게 먹었습니다. 톰은 쥐를 먹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면서 먹었습니다. 랜스 할아버지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먹었습니다.

아프리카 다이아몬드호로 돌아온 래스 할아버지는 서둘러 생선과 감자튀김을 만들었습니다. 그날 밤은 모두 배부르게 음식을 먹었습니다. 

랜스 할아버지는 흐뭇해하며 먹었습니다. 톰은 쥐를 먹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면서 먹었습ㄴ다. 쿡 선장은 가끔은 생선도 먹을 만하구나, 생각하면서 먹었습니다.




Posted by 버섯씨

미야자와 겐지 _ 은하철도의 밤

우리는 원하는 만큼 얼음사탕을 먹지는 못해도, 맑고 아름다운 바람을 먹고 아름다운 복숭아빛 아침 햇살을 먹을 수 있습니다.

또 나는 다 해진 옷이 밭이나 숲 속에서 가장 멋진 우단이나 비단, 보석이 박힌 옷으로 변하는 것을 이따금 보았습니다.

나는 그런 아름다운 음식이나 옷을 좋아합니다.

여기 나의 이야기들은 모두 숲과 들판과 철로에서, 무지개와 달빛한테서 얻어 온 것입니다.

떡갈나무 숲의 푸른 저녁을 혼자 거닐거나 11월의 산바람 속에 떨며 서 있으면 왠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것을, 나는 쓴 것뿐입니다.


Posted by 버섯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_ 루이스 캐롤_ 

상상의 샘이 메말라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면

이야기꾼은 진이 다 빠진 목소리로

"나머지는 다음에" 라고 말하네

"지금이 다음이에요"라는 

행복한 목소리들이 울리네


유은실 작가님_ 인터뷰 중

문학이란 불온한 것이고 동시에 또 따뜻한 것이잖아요.

아동문학 안에서도 불온함과 예술성과 따뜻함이 아름답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Posted by 버섯씨

문명화의 정도는 피부의 청결도에 비례한다고 한다. 인간에게 만약 혼이 있다면, 틀림없이 피부에 깃들여 있을 것이다. 물을 상상하기만 해도 피부는 몇 만 개의 빨판이 된다. 얼음처럼 차갑고 투명하고 깃털처럼 부드러운 혼의 붕대……. 1분만 늦었어도 온몸의 피부가 썩어 흐물흐물 벗겨져 나갔을 것이다.


밤 사이에 빨아들인 습기를 대기에 수증기로 다시 뿜어내는 모래…. 빛의 굴절 탓에 젖은 아스팔트처럼 빛나기 시작한다…. 하나 그 정체는 질냄비에다 볶은 밀가루보다 더 바짝 마른, 순수한 1/8mm에 지나지 않는다.


물에 떨어뜨린 먹물처럼, 탁한 피로가 고리가 되어, 해파리가 되어, 술 달린 조화(造花)가 되어, 원자핵의 모형도가 되어, 배어든다. 


Got a one way ticket to the blues, woo woo--

  (이건 슬픈 편도표 블루스야…) 부르고 싶으면 얼마든지 불러. 실제로 편도표를 손에 쥔 사람은 절대로 이런 식으로 노래하지 않는 법이다. 편도표밖에 갖고 있지 않은 인종들의 신발 뒷굽은 자갈만 밟아도 금이 갈 만큼 닳아빠져있다. 더 이상 걸을 수가 없다. 그들이 노래하고 싶은 것은 왕복표 블루스다. 편도표란 어제와 오늘이, 오늘과 내일이 서로 이어지지 않는 맥락 없는 생활을 뜻한다. 그렇게 상처투성이 편도표를 손에 쥐고서도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은 언젠가는 왕복표를 거머쥘 수 있는 사람에 한한다. 그렇기에 돌아오는 표를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지 않도록, 죽어라 주식을 사고 생명보험에 들고 노동조합과 상사들에게 앞뒤가 안 맞는 거짓말을 해대는 것이다. 목욕탕의 하수구나 변기 구멍에서 피어오르는, 절망에 차 도움을 구하는 편도파들의 아비규환을 듣지 않기 위해 텔레비전의 볼륨을 높이고 열심히 편도표 블루스를 흥얼거리는 것이다. 


뭐라 판단할 틈도 없이 바로 눈앞에 있는 섶나무 울타리 부근에서 적의를 품은 개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어 한 마리, 또 한 마리, 엄청난 연쇄작용을 일으키며 퍼지기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으르렁으르렁 허연 이빨을 드러낸 개 떼가 넘실거리며 다가온다. 남자는 가위 달린 로프를 꺼내 들고, 벌떡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이미 선택의 여지는 없다. 


잎이 팔랑팔랑 흔들리는 나무…. 도망치고 싶어도, 뿌리와 연결되어 있어 도망치지도 못하고 팔랑팔랑 몸부림치는 잎사귀의 무리….


그는 달의 표면을 보면서 떨림을 통하여 무언가를 연상한다. 군데군데 모래 가루를 뿌린  딱지처럼 꺼칠한 감촉… 말라 비틀어진 싸구려 비누… 아니 녹슨 알류미늄 도시락…. 그러고는 초점이 가까워지고, 거기에 뜻하지 않은 상이 맺혔다. 하얀 해골… 만국 공통의 표지인 독의 문장… 살충병 속에 든, 가루를 뿌린 하얀 정제… 그러고 보니, 풍화한 청산가리 정제와 달의 표면은 과연 감촉이 비슷했다. 그 병은 아직도, 문턱 가까이에 묻어둔 그대로였나….


손전등 빛이 한 줄기, 금빛 작은 새처럼 남자의 발치를 스치고 날았다. 그것을 신호로, 일고여덟 줄기가 일제히 빛의 접시가 되어 구멍 속을 기어다니기 시작한다. 벼랑 위에 있는 남자들의, ㅂ루탄 수지 같은 열기에 압도되어 반발하기에 앞서 그 광기가 전염될 것만 같았다.


------------------------


한 남자가 모래땅으로 곤충 채집을 나선다. 그가 찾은 해안가 모래 언덕에는 기이한 마을이 있다. 부서져 가는 벌집처럼 지하로 20미터 가까이 깊게 팬 모래 구덩이마다 바닥에 집을 지어 놓았다. 남자는 마을 사람들의 계략으로 여자 혼자 사는 모래 구덩이에 갖히고, 흘러내리는 모래에 집이 파묻히지 않도록 매일 삽질을 해야한다. 


Posted by 버섯씨

* 좀머 아저씨는 밀폐 공포증이 있어…… 그 말의 뜻은 아저씨가 방안에 가만히 있지 못한다는 것…… 방안에 가만히 잇지 못한다는 것은 밖에서 돌아다녀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 <밀폐 공포증이 있으니까 밖에서 돌아다녀야만 하고 …… <밀폐 공포증>이 <방안에 있지 못하는 것>가 같은 말이고, <방안에 있지 못하는 것>이 <밖에서 돌아다녀야만 하는 것>과 같다면, <밖에서 돌아다녀야만 하는 것>이 <밀폐 공포증>과 같은 말이지. 만약 그렇다면 그렇게 어려운 <밀폐 공포증>이란 말을 쓰지 말고 <밖에서 돌아다녀야만 하는 것> 이라고 쉽게 말해도 되겠지……. 그렇다면 <좀머 씨는 밀폐 공포증이 있기 때문에 밖에서 돌아다녀야만 한다>..는 말을 어머니가 하려면 이렇게 말해야 겠지. <좀머 씨는 밖에서 돌아다녀야만 하는 것이니까 밖에서 돌아다녀야만 돼……>


*우리 반에 카롤리나 퀴켈만이라는 여자 아이가 하나 있었다. 눈동자가 까맣고, 눈썹 색도 짙었으며, 이마 위 오른쪽에 흑갈색 머리를 핀으로 묶고 다니는 아이였다. 목덜미와 귓볼 밑에 작게 움푹 파인 곳에는 햇빛을 받으면 빛을 반짝 발하기도 하고, 바람결에 약간 흔들거리기도 하던 한 웅큼의 솜털이 있었다. 그 애는 웃을 때 듣기에 너무나도 좋은 허스키한 소리를 내면서 목을 쭉 뽑아 올리고, 머리를 뒤로 젖히고는 눈을 거의 감은 채 얼굴에 온통 환희의 표정을 넘쳐 흐르게 하였다. 나는 그런 얼굴을 수업 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면 언제나 실컷 쳐다보았다.


* <월요일에 너랑 같이 갈게!>


*비록 누나가 <아무리     피아노를 못 치는 사람이라도 디아벨리는 칠 수 있어>라는 말을 종종 했어도 나는 그를 사랑하였다.

Posted by 버섯씨
이전버튼 1 2 3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일상블로그 / 모든 것을 취미로 하는 사람 / 세상의 모든 귀여움을 사랑하는 사람
버섯씨

태그목록

공지사항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